칠리 크리스프를 처음 보면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이거 그냥 건더기 들어간 고추기름 아닌가?’
빨간 기름에 고추가 들어 있으니 그렇게 보이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둘은 꽤 가까운 친척입니다.
그런데 한 숟갈 떠보면 차이가 조금 더 분명해집니다.

고추기름은 기름, 칠리 크리스프는 건더기까지
고추기름(Chili Oil)은 기본적으로 고추의 매운맛과 향을 기름에 옮긴 조미료입니다.
고추뿐 아니라 여러 향신료를 함께 사용할 수도 있지만, 이름 그대로 중심에는 향이 밴 ‘기름’이 있습니다.
칠리 크리스프도 출발점은 비슷합니다.
고추와 기름을 사용하고 마늘, 샬롯 같은 재료를 함께 넣기도 합니다.
차이는 그 재료들을 걸러내지 않고 바삭한 상태로 다시 넣어 먹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Bon Appétit의 칠리 크리스프 레시피도 마늘과 샬롯을 기름에서 갈색이 나고 바삭해질 때까지 익힌 뒤, 고추가 들어간 기름에 다시 섞습니다.
그래서 병을 열었을 때 기름만 있는 게 아니라 숟가락으로 퍼먹을 만큼 건더기가 눈에 띕니다.
그래서 이름에 ‘크리스프’가 붙습니다
칠리 크리스프의 재미는 매운맛만이 아닙니다.
바삭하게 익힌 마늘이나 샬롯, 고추가 씹히고 제품에 따라 땅콩이나 콩, 참깨, 쓰촨 후추 같은 재료가 들어가기도 합니다.
Bon Appétit에는 아예 기름보다 바삭한 건더기의 비율을 높이고 콩이나 땅콩을 넣어 식감을 강조한 칠리 크리스프도 소개돼 있습니다.
그러니 고추기름을 음식 위에 ‘두른다’는 느낌이라면, 칠리 크리스프는 기름과 건더기를 함께 ‘떠서 올린다’는 모습이 더 잘 어울립니다.
계란이나 두부, 국수, 만두처럼 평범한 음식 위에 한 숟갈 올렸을 때 매운맛뿐 아니라 씹는 느낌까지 따라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럼 둘은 완전히 다른 소스일까?
꼭 그렇게 선을 그을 필요는 없습니다.
실제로 칠리 오일과 칠리 크리스프라는 이름은 꽤 느슨하게 사용됩니다.
어떤 고추기름은 건더기가 많이 들어 있고, 어떤 칠리 크리스프는 기름 비중이 높습니다. 만드는 사람과 제품에 따라서 들어가는 재료도 제각각입니다.
재미있는 예도 있습니다.
한 레시피에서는 고추와 향신료가 들어간 기름에서 고형물을 걸러내면 ‘칠리 오일’,
그 바삭한 고형물을 함께 살리면 ‘칠리 크리스프’가 되는 방식으로 두 가지를 나눕니다.
그래서 마트에서 둘 중 무엇을 살지 고민된다면 이름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병을 한번 보세요.
붉은 기름이 중심인지, 아니면 숟가락으로 건져 먹고 싶을 만큼 바삭한 건더기가 가득한지.
칠리 크리스프의 ‘크리스프’는 그 차이를 꽤 솔직하게 보여주는 이름입니다.
참고자료: Bon Appétit, “Chili Crisp”; Bon Appétit, “For Chili Crisp That’s All About the Crisp, Hold Back on the Oil and Double Down on the Soybeans”; Serious Eats, “I Tasted 19 Chili Crisps to Find 14 Spicy, Savory, and Garlicky Picks”; Eater, “Why Chile Oil is Trending”.